8월 31일(화) QT_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다.
- Chang Yong Park

- Aug 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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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빨리 왕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 갚아 주신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20. 요압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 것이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나니 네가 오늘 소식을 전하지 못하리라 하고 21. 요압이 구스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본 것을 왕께 아뢰라 하매 구스 사람이 요압에게 절하고 달음질하여 가니 22.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아무쪼록 내가 또한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 달려가게 하소서 하니 요압이 이르되 내 아들아 너는 왜 달려가려 하느냐 이 소식으로 말미암아서는 너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 하되 23. 그가 한사코 달려가겠노라 하는지라 요압이 이르되 그리하라 하니 아히마아스가 들길로 달음질하여 구스 사람보다 앞질러가니라 24. 때에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아 있더라 파수꾼이 성 문 위층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홀로 달려오는지라 25. 파수꾼이 외쳐 왕께 아뢰매 왕이 이르되 그가 만일 혼자면 그의 입에 소식이 있으리라 할 때에 그가 점점 가까이 오니라 26. 파수꾼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려오는지라 파수꾼이 문지기에게 외쳐 이르되 보라 한 사람이 또 혼자 달려온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27. 파수꾼이 이르되 내가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하니라 28.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아뢰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의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29. 왕이 이르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30. 왕이 이르되 물러나 거기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서 있더라 31. 구스 사람이 이르러 말하되 내 주 왕께 아뢸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니 32.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사무엘하 18장 19-33절)
승리의 소식 전하기를 꺼려하는 요압
지혜로운 인생은 말할 때를 분별한다. 압살롬은 전사했고, 전쟁은 승리로 끝났다. 당연히 승리의 기쁨을 누려야 할 상황이었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왜냐하면, 전쟁의 패배로 목숨을 잃은 자는, 왕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요압의 입장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다윗에게 알리기 매우 난처했다. 이는 곧, 왕의 아들이 죽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는 이러한 요압의 고민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승리의 소식을 왕에게 가장 먼저 전하면, 왕으로부터 상을 받을 줄로만 알았다(22절). 하지만 요압은 그를 말렸다. 설령 소식을 전한다고 하더라도, 오늘이 아닌 다른 날 전하라고 권면한다. 왜냐하면, “왕의 아들이 죽었기” 때문이다(20절).
아무리 좋은 결과, 좋은 소식이라도 전하는 때는 매우 중요하다. 상황에 맞는 말을 하는 게 진짜 지혜다. 잠언 기자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잠 25:11).”라고 말한다. 과거에 아비가일도 그랬다. 남편 나발이 무지하여 다윗의 분노를 샀을 때, 상황에 맞는 지혜로운 말로 다윗의 화를 누그러뜨렸고 그 집안을 구했다(삼상 25:24~31절). 이처럼 말을 할 때는 상황을 충분히 살피고 듣는 이에 맞게 전하는 게 지혜다.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곧 온전한 사람이다(약 3:2절).
다윗의 통곡
아버지의 사랑은 자녀의 그 어떤 허물보다 크다. 요압은 아히마아스 대신에 구스(에티오피아) 사람을 보내서 왕에게 보고하게 했다. 그러자 아히마아스는 기어코 자신이 소식을 전하겠다며 요압에게 다시 청한다. 결국 요압은 아히마아스의 끈질긴 요청에 허락을 해준다. 아히마아스는 구스 사람을 앞질러, 먼저 다윗에게 도착했다.
다윗 앞에 선 아히마아스는 먼저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음을 찬양했다. 아마도 이 소식을 들었던 다윗의 마음속엔 불길함이 엄습했을 것이다. 뒤이어 먼저 출발했던 구스 사람이 도착해서 다윗에게 압살롬의 죽음을 전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통곡하기 시작했다(33절).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조금 전까지 자신의 자리뿐만 아니라 목숨마저 위협했던 원수 압살롬이었지만, 다윗에게 압살롬은 ‘정적’ 이전에 ‘아들’이었다. 설령 내가 죽을지언정, 내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만큼은 결코 받아들이기 힘든 엄청난 아픔이었던 것이다.
이게 아버지의 마음이다. 아무리 자녀가 잘못된 선택과 행동을 했을지라도, 내가 낳은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그 모든 허물을 덮고도 남는다. 물론, 이러한 다윗의 반응은 자신을 따르는 신하들 앞에선 ‘왕’으로서는 부적절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 다윗에겐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인한 통곡과 오열만이 할 수 있던 유일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내겐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이 있는가? 나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얼마나 묵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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