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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월) QT_누구의 종인가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Aug 8, 2022
  • 3 min read

"13.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와서 애굽 땅을 칠 일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말씀이라 14. 너희는 애굽에 선포하며 믹돌과 놉과 다바네스에 선포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굳건히 서서 준비하라 네 사방이 칼에 삼키웠느니라 15. 너희 장사들이 쓰러짐은 어찌함이냐 그들이 서지 못함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몰아내신 까닭이니라 16. 그가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시매 사람이 사람 위에 엎드러지며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포악한 칼을 피하여 우리 민족에게로, 우리 고향으로 돌아가자 하도다 17. 그들이 그 곳에서 부르짖기를 애굽의 바로 왕이 망하였도다 그가 기회를 놓쳤도다 18.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이르시되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그가 과연 산들 중의 다볼 같이, 해변의 갈멜 같이 오리라 19. 애굽에 사는 딸이여 너는 너를 위하여 포로의 짐을 꾸리라 놉이 황무하며 불에 타서 주민이 없을 것임이라 20. 애굽은 심히 아름다운 암송아지일지라도 북으로부터 쇠파리 떼가 줄곧 오리라 21. 또 그 중의 고용꾼은 살진 수송아지 같아서 돌이켜 함께 도망하고 서지 못하였나니 재난의 날이 이르렀고 벌 받는 때가 왔음이라 22. 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으리니 이는 그들의 군대가 벌목하는 자 같이 도끼를 가지고 올 것임이라 2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황충보다 많아서 셀 수 없으므로 조사할 수 없는 그의 수풀을 찍을 것이라 24. 딸 애굽이 수치를 당하여 북쪽 백성의 손에 붙임을 당하리로다 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노의 아몬과 바로와 애굽과 애굽 신들과 왕들 곧 바로와 및 그를 의지하는 자들을 벌할 것이라 26. 내가 그들의 생명을 노리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과 그 종들의 손에 넘기리라 그럴지라도 그 후에는 그 땅이 이전 같이 사람 살 곳이 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7. 내 종 야곱아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보라 내가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며 네 자손을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평안하며 걱정 없이 살게 될 것이라 그를 두렵게 할 자 없으리라 2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종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나라들은 다 멸할지라도 너는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법도대로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예레미야 46장 13-28절)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사람은 지나치게 의지하는 것의 노예가 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 중 하나가 종(노예)이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우리는 항상 그 무언가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의 주인이 자신이거나 성공과 번영일 수 있다.


본문에서 ‘그를 의지하는 자를 벌할 것’이라 말씀하신다(25절). 여기에서 ‘그’는 애굽이다. 애굽은 세상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애굽을 의지하는 사람은 성공과 번영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당시의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러했다. 눈앞에 보이는 강대국 애굽을 의지하면 그 어떤 나라들의 위협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향한 심판을 분명히 선포하신다.


‘선포하다’의 히브리어의 원형 ‘나가드’는 ‘어떤 것을 밝은 빛 아래에 두어서 그 물체가 선명히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애굽이 멸망할 것임을 명백히 알 수 있도록 드러내라는 의미이다. ‘삼키웠느니라’와 짝을 이루어 예언적 완료형 문법을 사용함으로 애굽의 심판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14절).


심판을 선포하시면서 회복의 말씀도 주신다(26절). 왜냐하면,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심판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알 수 있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내가 정말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의도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 절망 중에도 희망의 새 아침이 밝아 온다. 본문에서 애굽과 애굽의 신과 애굽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심판의 메시지가 선포된다. 애굽의 종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심판이 반드시 임할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특히, 4절에는 ‘유린하다’는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한다. 이 단어는 이리가 먹잇감을 추격하고 공격하여 상해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끝까지 추격하여 먹잇감을 잡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표현이다.


반면, 하나님의 종 야곱에게는 ‘두려워 말라’를 거듭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28절). 여기서 '내가 함께 있나니'로 번역된 히브리어 '키 잇테카 아니'는 이유의 접속사 '키'와 '함께'란 뜻의 전치사 '에트'에 2인칭 단수 접미어가 결합된 '잇테카'와 1인칭 단수 대명사 '아니'가 결합하여 '이는 너와 함께 내가 (있기) 때문이다(NASB, For I am with you)'라는 뜻이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에는 동사가 없다. 하나님께서 함께 있으시되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항상 한 몸처럼 동거하신다는 뉘앙스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즉, 이 말씀은 과거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된 약속이 아니라, 거룩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적용될 약속이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 유효한 말씀이므로 우리 성도들은 어떤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옥스퍼드 주석).


심판의 메시지 속에서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인애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저녁, 흑암, 심판이 끝이 아니다. 반드시 새 아침이 온다. 절망의 흑암 중에 있을지라도 희망의 서광으로 떠오르는 찬란한 빛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흑암 가운데 있을지라도 희망의 참 빛을 따라 살고 있는가?


Photo by Jehyun Sung on Unsplash.


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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