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화) QT_앎과 함
- Chang Yong Park

- Aug 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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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 블레셋 사람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물이 북쪽에서 일어나 물결치는 시내를 이루어 그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성읍과 거기에 사는 자들을 휩쓸리니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그 땅 모든 주민이 울부짖으리라 3. 군마의 발굽 소리와 달리는 병거 바퀴가 진동하는 소리 때문에 아버지의 손맥이 풀려서 자기의 자녀를 돌보지 못하리니 4. 이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 바 도와 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올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리라 5. 가사는 대머리가 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잠잠하게 되었나니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6. 오호라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네 칼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 7. 여호와께서 이를 명령하셨은즉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 하여 그가 정하셨느니라 하니라"(예레미야 47장 1-7절)
발본색원
악은 뽑을 때, 반드시 뿌리까지 제거해야 한다. 뿌리가 제거되지 않으면, 언젠가는 또 자라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가시와도 같은 존재였던 블레셋을 향한 심판을 명하시며 이를 분명히 하신다. 블레셋을 심판하시는데, 철저하게 심판하신다.
먼저, 블레셋을 도와주고 있는 두로와 시돈을 끊어 버리신다. 악에게 도움을 주는 세력도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갑돌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까지도 심판하신다. 갑돌섬은 블레셋의 근원지를 말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악의 뿌리까지 제거하기를, 악은 어떠한 모양이라도 버리길 원하시는 것이다(살전 5:22).
악은 선의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바울 사도는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천사가 하는 하나님의 일인 줄 알았는데, 사탄의 일, 악의 일을 행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신의 삶을 점검해야 한다.
1절에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이 가리키는 의미는, 바벨론이 블레셋과 두로와 시돈을 멸망시킬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때, 곧 블레셋이 그저 작은 도시 국가로 있을 때를 말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판단과 생각을 넘어선다. 우리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신 분이시다. 그렇기에 사람의 눈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나는 악에 대하여 그 뿌리까지 제거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언행일치
진정한 앎은 행함으로 이어져야 한다. 함이 쌓이고 쌓이면 ‘됨’, 즉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가며, 됨은 ‘삶’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에 머물러서는 삶이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말씀을 알고 인용하기도 한다. 오늘 본문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러했다. 6절에 ‘오호라 여호와의 칼이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하여 자신들을 심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 심판은 과거에 자신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힌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을 알고 있음에도 그들은 한탄만 할 뿐, 하나님께 나아오지 못했다.
하나님께 나오지 못하는 자의 결말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칼에 유린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 심판이 얼마나 철저하고 끔찍한지 아버지가 자녀를 돌보는 부성애마저도 잃어버릴 것이라 말씀한다. 블레셋의 심판에서 특이한 점은 회복의 말씀이 없다는 데 있다. 46장 애굽의 심판에서는 애굽을 다시 회복시키신다는 말씀이 있었지만, 블레셋의 심판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 블레셋은 멸망 이후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했다. 단순한 지명(팔레스타인)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행함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 행함이 하나님 사람으로의 성품을 만들고, 그로 인해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이 우리의 삶에 나타날 때, 비로소 참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 할 수 있다. 이름만 기독교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앎’이 행‘함’으로, 우리의 인간 ‘됨’으로, ‘삶’으로 나타날 때,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 나타난다.
나는 언행일치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앎에서 함으로, 됨에서 삶으로 변화하게 하는 참된 지식을 갖고 있는가?
Photo by Wonderlan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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