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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월) QT_인과응보인가?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Sep 11, 2023
  • 3 min read

"18.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23.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24.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25.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26.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 곳을 떠났더니 27. 한 사람이 여관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고 본즉 그 돈이 자루 아귀에 있는지라 28.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29.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 그들의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그들이 당한 일을 자세히 알리어 아뢰되 30.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엄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우리를 그 땅에 대한 정탐꾼으로 여기기로 31. 우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확실한 자들이요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32. 우리는 한 아버지의 아들 열두 형제로서 하나는 없어지고 막내는 오늘 우리 아버지와 함께 가나안 땅에 있나이다 하였더니 33.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르되 내가 이같이 하여 너희가 확실한 자들임을 알리니 너희 형제 중의 하나를 내게 두고 양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34.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 오라 그러면 너희가 정탐꾼이 아니요 확실한 자들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하고 35.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 사람의 돈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36.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37.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38.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창세기 42장 18-38절)


죄책감과 변화


세월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뿐이다. 요셉은 형들이 아직도 과거에 자신을 따돌렸던 사람들로 남아있는지 의심한다. 왜냐하면, 요셉의 친동생인 막내 베냐민마저 자신처럼 괴롭힘당하지 않았는지 걱정되어서다(18-20절).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형들이 인과응보라고 자책하며 서로 대화한다. 요셉은 그 모습에서 형들의 변화된 모습을 발견한다.


형들은 대화 가운데 더는 요셉을 ‘꿈꾸는 자’로 표현하지 않는다. ‘꿈꾸는 자’는 요셉을 비아냥거리던 별명이다. 그런데 지금 21절에서는 ‘아우’라고 표현한다. 22절에서는 ‘그 아이’라고 부른다. 예전이면 절대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형들은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여전히 가족으로 생각한다(13절).


변화된 형들은 요셉이 자신들의 언어를 모를 거로 생각하며 의논한다. 21절에서 형들은 서로 깊은 죄책감을 표현한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범죄하였도다’라는 단어의 원어는 ‘아 ’이다. 이 단어는 ‘죄 있는’ 따라서 ‘속죄제를 드리는’이라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속죄제로 용서해주신다. 속죄제가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 즉, 형들은 용서해줄 요셉이 죽어서 어디서도 용서받을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결과 지금 자신들이 겪는 희한한 상황이 인과응보라고 표현하며 자책한다. 요셉은 형들의 태도와 말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고 벅차올라 밖에 나가서 울고 온다.


나 자신은 문제가 다가올 때 인과응보라고 생각했던 경우가 있는가? 나 자신은 누군가 변화된 모습을 보고 감동한 적이 있는가? 하나님께 감동을 드리려면 내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

하나님의 섭리와 불안감


은혜에 반응하지 못하면 고통에 반응한다. 요셉의 형들이 인과응보라며 자책하는 모습은 형들이 분명히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요셉은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28절에 요셉은 형들의 곡식 자루에 곡식 대금을 그대로 넣어둔다. 요셉이 넣어놓은 돈을 발견한 형들은 숨통이 조여오는 불안감을 느낀다.


불안한 가운데서도 이 상황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고 한다. 특히 28절에서 “우리에게 행하셨는가”라는 말씀을 히브리어 ‘아사’로 표현한다. 이 단어는 ‘행하다, 지정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즉, “계획적으로 그것을 선택해서 행한다.”라는 의미다. 여기에서 다시금 형들의 신앙이 조금은 성장했음을 알게 된다. 섭리의 은혜에 반응하는 모습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려운 일들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런데도 형들은 더욱 성장이 필요해 보인다. 다시 은혜보다 고통스러운 환경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숨 막히는 불안감은 형들과 아버지 야곱까지 잘못된 반응을 하게 만든다. 야곱은 아들 시므온이 볼모로 잡혀있는데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한다(창 34:25,30;49:5-7).


장자 르우벤은 그때처럼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예전에 요셉을 지키지 못했던 모습이 반복된다. 무엇보다 도덕적 결함이 있었기에(창 35:22), 르우벤의 말들은 힘이 없다. 야곱에게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자 37절에서 무리수를 두는 말로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한다.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나 자신은 환경의 영향을 받고 흔들리는 사람인가?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인가? 나 자신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삶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Photo by william warb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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