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목) QT_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라
- Chang Yong Park

- Sep 1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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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56.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지 마옵소서 57.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58.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 59. 여호와여 나의 억울함을 보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 60. 그들이 내게 보복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보셨나이다 61.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비방하며 나를 모해하는 모든 것 62. 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들과 종일 나를 모해하는 것들을 들으셨나이다 63. 그들이 앉으나 서나 나를 조롱하여 노래하는 것을 주목하여 보옵소서 64.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그들에게 보응하사 65. 그들에게 거만한 마음을 주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소서 66. 주께서 진노로 그들을 뒤쫓으사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멸하소서"
(예레미야애가 3장 55-66절)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는 예레미야
환난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3장은 비극의 상황 가운데 있는 경건한 자의 영적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그 고통은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전능하신 섭리를 통해서 소망으로 이어진다. 또한 지금 겪는 고난이 하나님의 공의 때문이라는 것을 유다 백성들은 인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게 되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파멸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고, 55절과 같이 주의 이름을 불렀다. 여기서 ‘부르다’는 히브리어로 ‘카라’인데 ‘선포하다’, ‘소환하다’라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카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가장 많이 사용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해 주실 때 기도하기는 쉽다. 그러나 우리가 깊은 구덩이에 내던져진 때에 하나님을 찾고 구하기는 어렵다. 만약에 우리가 예레미야처럼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다면 우리 믿음은 진짜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은 선하신 분으로 간구하는 자의 곁에 오셔서 도움을 허락하신다고 말했다. 이 말은 그가 하나님이 유다 백성들의 보호자이시며, 도움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었고 경험하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고백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다. 미천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주신 그 사랑은 인류 최고의 사랑이다. 그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가 환난 가운데 부를 때에 응답하신다.
회개의 근본은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지금 나의 회개 기도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진실한 기도인가? 아니면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즉흥적인 기도인가?
억울함과 원통함을 풀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환란 가운데 있는 우리를 주목하고 계신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당한 잔혹한 행위를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다고 말한다. 이러한 표현 양식은 그 당시의 선지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불행을 없애 주시도록 간구할 때마다 그분의 도우심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고백이다.
우리는 인생의 고난을 경험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외면하셨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절망 속에 있을 때가 많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이러할 때, 선지자의 고백을 기억해야 하며,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신원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사악한 행동을 반복하여 말함으로 하나님께 자비를 호소하고 있다. 60절에는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다고 이야기했지만 62절에서는 ‘들으셨다’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듣다’는 히브리어로 ‘샤마’인데 ‘경청하다’, ‘순종하다’, ‘기도에 응답하다’라는 뜻이 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악한 행동을 지적하며 그들이 종일 유다 백성들을 괴롭혔다고 말했다. 이는 환난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해서 일어났다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도 믿음의 삶 가운데서 그러한 고난을 경험할 수 있다.
만약에 우리가 위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더 큰 도구로 만들기 위해서 용광로 같은 심한 환난을 장기간 허락한 시즌임을 알아야 한다. 그 시즌에 우리는 환난 중에 인내하며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그릇이 되기 위해서 훈련받는 것을 기뻐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보고, 듣고 계실 정도로 신실하시다. 나는 그러한 하나님을 신뢰하며 절망의 시간을 이겨내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처럼 절망의 심연에 빠져 있는가?
Photo by Nikko Macaspac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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