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수) QT 믿음의 경계선을 지켜라!
- Chang Yong Park

- Sep 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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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 2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 3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제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4 제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 고리 넷을 만들고 5 그물은 제단 주위 가장자리 아래 곧 제단 절반에 오르게 할지며 6 또 그 제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지며 7 제단 양쪽 고리에 그 채를 꿰어 제단을 메게 할지며 8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 9 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지니 남쪽을 향하여 뜰 남쪽에 너비가 백 규빗의 세마포 휘장을 쳐서 그 한 쪽을 당하게 할지니 10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11 그 북쪽에도 너비가 백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기둥의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12 뜰의 옆 곧 서쪽에 너비 쉰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열이요 받침이 열이며 13 동쪽을 향하여 뜰 동쪽의 너비도 쉰 규빗이 될지며 14 문 이쪽을 위하여 포장이 열다섯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요 15 문 저쪽을 위하여도 포장이 열다섯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16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짠 스무 규빗의 휘장이 있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 17 뜰 주위 모든 기둥의 가름대와 갈고리는 은이요 그 받침은 놋이며 18 뜰의 길이는 백 규빗이요 너비는 쉰 규빗이요 세마포 휘장의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그 받침은 놋이며 19 성막에서 쓰는 모든 기구와 그 말뚝과 뜰의 포장 말뚝을 다 놋으로 할지니라 2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21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출애굽기 27:1~21)
번제단에 올라가는 믿음
바이러스를 잡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하듯, 죄의 바이러스도 그렇다. 구약 제사의 기초는 희생 제물을 불태워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으로 이 일은 ‘제단’에서 이루어졌다. ‘제단’으로 번역된 ‘미즈빼아흐’는 ‘(동물을)죽이다’, ‘(짐승을)잡다’, ‘희생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자바흐’에서 유래되었다. 단어 자체가 제단의 역할을 잘 설명한다.
법궤, 진설병 상, 분향단은 조각목으로 만들고 정금으로 입혔지만, 번제단은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입힌다. 놋은 융해점이 높아 고온을 견딜 수 있어서 불을 사용하는 제단에 적합하다. 이와 같은 실용적인 목적 외에도 상징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놋’은 성경에서 심판과 저주를 상징한다(신28:22-24). 즉, 하나님 공의의 진노와 심판이 이 번제단에서 이루어진다.
번제단에서 날마다 수없이 많은 양과 소와 염소가 불태워진다. 죄 없는 짐승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날마다 짓는 죄와 허물을 대신 지고 하나님 공의의 진노와 심판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짐승의 희생 제물을 바치는 번제단은 그리스도께서 희생 제물로 바쳐진 십자가를 상징한다. 번제단 그리고 십자가에서 드려지는 대속의 죽음으로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인간은 하나님과 화해할 수 없다. 하나님과 화해하지 못한 인간은 결국 죽음에 이른다.
이 시대에는 번제단이 필요 없다.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십자가에서 죄를 해결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아직 죄에서 온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자아를 죽여 스스로 겸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죄에 사로잡혀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의 마음속에 속죄할 수 있는 번제단이 있는가? 그 번제단에서 나 자신을 죽이고 스스로 겸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가?
거룩함을 지키는 경계선
방황은, 방종하고, 방탕하게 한다. 성막의 뜰은 세마포 휘장을 쳐서 성막 밖의 땅과 구분한다. 세마포로 번역된 히브리어 ‘쉐쉬’는 ‘희다’라는 뜻을 지닌 ‘솨이쉬’에서 유래하였는데 ‘가는 베’를 의미한다. 즉, 세마포 휘장은 가는 베로 짜서 만든 포장을 가리킨다. 이 휘장은 성막의 뜰 주변에 둘러쳐 성막의 경계를 나타낸다. 그리고 성막과 세상을 구분 짓고, 외부인이나 가축의 무단출입을 막아 성막의 거룩함을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성막은 성막 휘장으로 세상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즉, 거룩한 곳과 속된 곳이 구분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 속한 것과 세상에 속한 것은 결코 짝할 수도, 연합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후6:15-16)
성도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고전3:16).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거룩해야 한다. 그래서 성도는 거룩한 생활을 통해 자신을 세상과 구별시켜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으로서 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전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내 안에 세상적인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세마포 휘장이 쳐져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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