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화) QT_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 Chang Yong Park

- Sep 19, 2023
- 3 min read
"16.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고 17. 바로는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에게 명령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18.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19. 이제 명령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버지를 모셔 오라 20.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21.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대로 할새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들에게 수레를 주고 길 양식을 주며 22. 또 그들에게 다 각기 옷 한 벌씩을 주되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주고 23. 그가 또 이와 같이 그 아버지에게 보내되 수나귀 열 필에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을 실리고 암나귀 열 필에는 아버지에게 길에서 드릴 곡식과 떡과 양식을 실리고 24. 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 25. 그들이 애굽에서 올라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26. 알리어 이르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하여 어리둥절 하더니 27. 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에게 말하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28.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창세기 45장 16-28절)
바로 왕의 환대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에 미친 존재감이다. 요셉의 형제들이 애굽에 왔다는 소식을 바로 왕이 들었다. 바로 왕은 누구보다 기뻐했다. 왕뿐만 아니라 모든 신하들이 기뻐했다. 이는 요셉이 자기 형제들을 재회한 사건만을 가지고 기뻐한 것이 아니다. 애굽이 이처럼 전 국민적으로 기뻐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이 보디발의 노예 출신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부담이다. 그러한 요셉에게 형제가 찾아왔다. 이것은 그가 노예 출신이 아닌, 자유민이었음을 뜻한다. 애굽의 총리인 요셉을 늘 따라다니던 소문이 시원하게 해결되는 순간이다. 이에 바로 왕은 요셉의 가족을 초청한다. 바로 왕과 요셉 개인의 관계를 넘어 전 국가적 차원으로 말이다. 이는 요셉의 가족을 한 나라의 국빈으로 초대한 것이다.
히브리어 ‘아갈로트’는 신분이 높은 사람을 실어 나르는 도구인 ‘수레’를 뜻한다(19절). 수레는 요셉의 식구들의 이주를 돕기 위해 왕이 특별히 보낸 것이다. 수레는 야곱에게 아들 요셉이 살아 있다고 하는 형제들의 말에 증거가 되었다. 당시 근동 국가들 가운데 수레를 만들어 사용한 나라는 애굽 뿐이었다. 더군다나 이 정도의 호의를 베푼다는 것은 요셉이 크게 성공하였음을 뜻했다. 바로 왕이 요셉의 가족들에게 베푼 환대는 무한한 사랑이 넘친다. 그만큼 하나님의 사람 요셉이 애굽에 있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나는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가?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통해 세상에서 기쁨의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진격의 이스라엘
자녀를 향한 사랑은 주저함 없이 나아가게 한다. ‘이스라엘의 아들’이라고 하는 원어는 ‘빼네 이스라엘’이다(21절). 이는 창세기 전체에 4번밖에 나오지 않는 특별한 단어이다. 창세기의 저자는 가나안과 애굽 사이의 ‘출발’과 ‘귀향’이란 커다란 사건에 이처럼 기록했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와 같은 ‘특별한’ 단어를 왜 사용했을까? 저자가 ‘특별히’ 이처럼 큰 사건에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단순히 식량을 얻기 위해, 또는 가족 전체가 애굽으로 이주하기 위함이 아님을 말한다. 즉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셨던 이름 ‘이스라엘’을 통한 언약의 민족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를 직역하면 “나는 가리라 그리하여 나는 내가 죽기 전에 그를 본다”이다(28절). 여기에서 ‘나는 가리라(엘레카)’는 연장형(cohorative)으로 쓰였다. 히브리어에서 연장형은 자기 권고 혹은 자기 의향을 나타낸다. 이는 죽기 전에 꼭 사랑하는 요셉을 보기 위해 애굽으로 가고 말겠다는 야곱의 강한 집념을 보여준다. 아들 요셉을 향한 아버지 야곱의 마음과 감정이 강력히 나타난다.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진격한다.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만나기 위해 이스라엘(야곱)은 애굽을 향해 진격한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민족)은 사단의 권세를 치기 위해 구속사를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나를 위해 날마다 진격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가? 반대로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세상을 향해 진격할 준비가 되었는가?
Photo jesus loves austin on Unsplash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