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QT_내게서 빛나시는 하나님
- Chang Yong Park

- Sep 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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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세기 39장 1-23절)
빛을 보는 사람
땅의 빛을 잃은 자는 하늘의 빛을 먼저 찾아야 한다. 요셉은 아버지 이스라엘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아들이었다. 그뿐 아니라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듯한 꿈을 꾸었다. 그러나 오늘 요셉은 애굽의 장군 보디발의 노예일 뿐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과 좌절이 배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요셉도 당연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러나 본문에서 요셉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2절)
요셉은 여호와께서 함께하셔서 ‘형통한’ 사람이 되었다. 여기서 형통이란 단어는 ‘이쉬마츠리아흐’로 사람을 뜻하는 ‘이쉬’와 번성함을 뜻하는 동사 ‘찰레아흐’가 합쳐져 있다. 이 단어의 뜻은 ‘번영의 사람’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요셉이 손대는 모든 일이 눈에 띄게 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좌절과 원망의 삶을 살아야 했던 요셉이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니 그는 견딜 수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폭풍을 만나더라도, 등대의 불빛이 보이면 안심할 수 있다. 요셉은 좌절과 원망의 바다 한가운데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호와란 빛을 발견했고, 그는 형통한 사람이 되었다. 여호와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심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나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빛이신 여호와를 바라보고 있는가?
반사체의 삶
하늘의 빛을 받는 자는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반사해야 한다. 보디발 장군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요셉에게 고난이 찾아온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한 것이다. 자신을 유혹해 오는 보디발의 아내에게 요셉은 말한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9절)
요셉의 고백을 살펴보면 요셉의 권력을 알 수 있다.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하지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권력자이다. 권력은 자신을 높이기에 가장 좋은 무기이다.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는 자리이다. 주인의 아내마저 취할 기회에 놓인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은 발광체가 아닌 반사체임을 고백한다.
요셉은 항상 빛이신 하나님만을 의식한다. 그 빛을 받기 위해 산다. 그리고 그 빛을 비추는 삶을 살았을 뿐이다. 요셉의 자기 부정은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했으니 가능한 일이다.
요셉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가 꿈을 꾸는 자여서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앞에 있는 하나님을 발견하며 의식하는 삶을 살았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낼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넘어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하나님의 빛을 받아 세상을 비추는 삶을 살고 있는가?
Photo by zac duran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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