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목) QT_다른 복음은 없다
- Chang Yong Park

- Sep 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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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서 1장 1–10절)
바울의 빠른우편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 진리다. 갈라디아서가 바울에 의해서 쓰여졌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바울은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이 편지를 썼다(2절). 갈라디아 지방에 대해서는 ‘남갈라디아’와 ‘북갈라디아’로 의견이 나뉜다.
갈라디아인들은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또한 이상한 것, 새로운 것들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복음을 듣게 되었을 때 사도 바울을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따뜻하게 환영했다. 할 수만 있다면 눈이라도 빼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갈4:14,15). 그러나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사람들인 만큼 쉽게 바울을 잊어버리고 이단에 빠져버렸다.
갈라디아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1:6–9, 5:2–3, 6:12–13). 이들은 교회 안에 들어온 유대주의자들이었다. 구원을 위해 할례와 안식일, 절기와 음식 등 율법을 강조했다. 이는 그들의 육체로 자랑하기 위함이었다(갈 6:12,13).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6:14). 바울이 할례와 율법의 행위를 강하게 반대한 이유가 있다. 그들의 주장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헛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2:21). 바울은 사도된 자로서(1절), 이러한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해 갈라디아서를 기록하였다.
처음의 뜨거움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열심은 때에 따라 뜨거웠다 식을 수 있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놓여진 상황 앞에 합리화하며 진리를 바꿔서는 안된다.
다른 복음의 결과
다른 복음을 전하려면 심판 받을 각오부터 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진리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참된 길로 가다가 다른 길로 가게 되었을 때, 마지막 종착지를 생각해 보자. 그러면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깨닫게 된다.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의 모습을 보며 놀라워했다(6절). 너무나 쉽게, 너무나 짧은 시간에 진리를 떠나 다른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6절에 ‘떠나다’(메타티데스데)는 ‘이동하다’, ‘바꾸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현재형으로 쓰였다. 즉, 갈라디아인들이 완전히 진리에서 떠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도 바울은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만일 누구든지’ -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두 번이나 강력하게 경고한다(8-9절).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누구라도 저주를 받는다. ‘저주’(아나데마)는 ‘영원한 사망’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즉,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격한 말은 사람들을 의식한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듣기 좋은 말만 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간절한 마음으로 권면하고 있다.
복음을 말씀대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자신도 모르게 다른 복음을 붙잡고 있지는 않는가?
Photo by Luke Stackpool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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