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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월) QT_공동체를 대하는 바울의 자세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Sep 26, 2022
  • 3 min read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갈라디아서 2장 1-10절)


다른 사람들이 전하는 같은 복음


댐에 작은 구멍을 방치하지 않듯, 공동체 안에 분열의 구멍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2장에 이르러서도 사도 바울의 변호적 어조는 잦아들지 않는다. 바울은 거짓 형제들에 대항하여, 그가 전하는 복음은 다른 사도들의 복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이것은 당대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섞여 들어온 유대주의자들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유대주의자들은 사도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다른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과 다르다며 성도들의 마음을 혼란케 하였다.


이러한 이견에 대항하여, 사도 바울은 먼저 예루살렘 공의회의 사건을 재진술한다. 사도행전 15장은 초대교회 공동체에 있었던 예루살렘 공의회에 대하여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사도들과 바울, 그리고 바나바는 이 회의를 통해 이방인 선교 정책에 대해 결정할 수 있었다. 회의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할례나 율법의 조건 없이, 믿음으로만 하나님 나라 백성의 공동체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바울은 이 회의의 사건을 진술하며, 자신이 전한 복음의 원리와 다른 사도들의 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다.


바울은 동시에 그 자신과 사도 베드로의 다른 정체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위한 사역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역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들은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나 각기 다른 곳으로 사역을 위해 떠났다. 그들은 같은 복음을 전했지만, 그들이 전했던 대상의 문화권은 차이가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취한 정책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바울은 이러한 정체성의 차이를 본질의 차이로 오해하는 것은 거짓 형제들의 책략에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함께 동역하는 형제들의 다른 특성을 본질의 틀림으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본질을 붙들고 있는가?


​강한 자들에게는 완고하게, 약한 이들에게는 유순하게


​강한 이들을 대적하였던 바울은 약한 이들의 마음을 돌아보기에도 힘쓴다. 거짓 형제들을 대항하는 사도 바울의 필체는 강하고 직설적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한시라도 복종하지 아니하였다”고 단언하여 선포한다(5절). 그들은 베드로가 언급한 것과 같이, 조상들도 능히 메지 못했던 멍에를 다시 채우려는 일(행15:10)을 다시 행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육체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항하여,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지닌 자유를 엿보고 종으로 삼고자 하였다“고 지적한다(4절).


바울은 이들을 대적하기 위하여, 저명한 사도들을 추켜세우기를 거절하지 않는다. 유대주의자들이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 베드로와 요한 등의 뭇 사도들은 이미 바울 및 바나바와 손을 잡은 바 있다(9절). 당대의 유력한 사도들의 권위에 의지하여 논변을 펼치는 사도 바울의 논조는 영리하며 확고하다.


그러나 성도들을 생각하는 바울의 태도는 이와 정 반대의 모습을 가진다. 이방인이었던 디도가 회심한 이후, 바울은 그에게 할례할 것을 종용하지 않았다. 할례의 규례는 이미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비본질적인 것이기도 하였거니와, 이방인들의 마음에 달갑지 않았던 것이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방인에게로 향하는 바울은 그들의 가난함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10절). 연약한 성도들을 대하는 사도 바울의 마음은 유순하며 따뜻하다.


​나는 대적해야 할 곳에는 강하게, 양보해야 할 곳에는 유순하게 대하고 있는가? 함께 신앙 생활하는 우리의 교우들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어떠한가?


Photo by Nicholas Barbaro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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