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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목) QT_야곱의 축복2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Sep 28, 2023
  • 3 min read

"13.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14.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15.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16.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17.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19.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20.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창세기 49장 13-28절)


참된 구원


참된 구원은 구원자(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는 것이다. 야곱은 자녀들을 축복하다 말고 갑자기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린다”라고 기도한다(18절).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첫 번째는 자기 죽음이 임박한 것을 자각한 야곱이 축복을 마칠 때까지 기력을 유지해 달라고 간구한다는 것이다. 2) 두 번째는 이미 예언한 단 지파의 타락으로부터 그의 후손들을 보호해 달라는 기도로 이해하는 것이다. 3) 세 번째는 자기 아들들에게 영광된 메시아 왕국과 관련된 축복을 전하는 동안 야곱이 더욱더 큰 구원을 바라게 되었다는 것이다.


야곱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모든 백성에게 허락한 영생의 복을 간절히 사모함으로 보는 게 가장 타당하다(옥스퍼드 주석).


이를 뒷받침하는 단어가 바로 ‘구원’이다. 구약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단어는 이곳에 처음 등장한다. 히브리어 ‘예수아’는 신약시대에 등장하실 메시아 예수와 같다는 점에서도 암시받을 수 있다. 즉 진정한 메시아의 소망을 함축하는 야곱의 기도이다.


참된 축복


참된 축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야곱의 생애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깨달아가는 과정이고, 그 진리를 예증하는 삶이다(박영선).


참된 축복은 사람에게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말미암는다. “야곱의 전능자, 네 아버지의 하나님, 네 아버지의 축복이 네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24~26절)라는 말씀은 자칫하면 야곱이 선조들보다 월등하다고 볼 수 있는 구절이다. 하지만 이 구절은 “누가 더 잘났느냐”가 아니라, “누가 하나님을 더 잘 아느냐?”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을 더 잘 안다는 야곱의 고백이다. 왜 그럴까? 야곱은 파란만장한 삶을 산다. 아브라함이나 이삭보다 아픔의 시간을 훨씬 더 많이 겪는다. 하나님께 매를 더 많이 맞는 고난의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였던 간증이다. 따라서 야곱은 일을 이루는 주체를 자신이 아닌 하나님으로 인정한다.


야곱은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한다. 원어는 “그들 각 사람의 축복에 따라 축복하였다.”라는 뜻이다. 각 지파가 받아야 할 축복은 이미 정해져 있으며 야곱은 단지 그 축복을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 축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따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에게 원하는 만큼 주시기 때문이다.


유다와 요셉이 장자 르우벤이 받아야 할 축복을 대신 받는다. 유다는 영적인 장자권인 왕위를 받고, 요셉은 두 지파의 축복을 받는다. 역대상 5장 1-2절은 그 이유를 잘 설명한다.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을 받게 된다. 아무리 좋은 축복의 말씀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그릇이 작으면 다 담아내지 못한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여러 그릇이 있지만,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그릇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다고 말한다(딤후 2:20-21). 자기를 깨끗하게 하지 못한 르우벤, 시므온의 결말과 반대로 하나님 편에 섰던 레위의 결말을 본다.


나의 분량은 얼마나 되는가? 주인이 쓰심에 합당한 깨끗한 그릇인가?


Photo by Brooke Lar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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