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목) QT_다윗이 재건을 계획하다!
- Chang Yong Park

- Sep 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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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12.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14.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15.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16.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17.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18.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19.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2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22.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23.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사무엘하 19장 11-23절)
다윗이 유다를 택함
충성된 자가 쓰임 받는다. 다윗은 혼란스럽고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워야 했다. 여기엔 지혜와 치밀한 전략이 필요했다. 다윗은 나라를 새롭게 하기 위해 유다 지파를 지목했다. 당시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던 사독과 아비아달을 등용했고,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세세하게 일러주었다(19:11-12).
다윗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의 현주소를 절감했던 후였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추구하며 신의나 의리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며, 앞으로 다윗이 잘 통치하기 위해 가슴 속 깊숙하게 새겨진 중요한 키워드는 곧 ‘충성’이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위해 변함없는 충성을 다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들이 곧 유다 지파였다.
다윗은 아마사를 먼저 보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게 했다. 다행히 다윗의 전략은 성공했다.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 같이 다윗에게 기울게 됐다(14절). 직전까지 보여줬던 시끄럽고 혼란스러웠던 정세는 다 뒤로 하고, 유다 지파는 다윗과 함께 같은 마음으로 나라의 재건을 위해 충성을 다짐하게 됐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굳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돌들을 명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실 수 있지만, 사람을 친히 동역자로 삼으셔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신다. 따라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 곧, 영광스러운 인생인 것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의 중요한 조건이 곧 ‘충성’이다. 과거 모세가 그랬고, 여호수아가 그랬다.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인물들은 다 하나님께 ‘충성’했던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충성스러운 자를 찾고 계신다(마 25:23, 딤후 2:2).
다윗과 시므이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인생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다. 어느 정도 나라의 혼란이 잦아들자 시므이가 다윗을 급하게 찾아왔다. 그리고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패역한 일을 잊어달라고 다윗에게 간청한다(19절). 또한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요셉 족속 중에 가장 먼저 달려와서 다윗을 영접한다고 말한다(20절).
그렇다면 시므이가 했던 패역한 일은 무엇이었나?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가던 다윗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열심히 저주했던 일이다. 그랬던 그가 지금 다윗 앞에서 자신이 처한 족속 중에 가장 먼저 달려와서 왕을 알현하고 있다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참 간사하다.
이에 다윗은 매우 넓은 아량을 보인다. 물론 훗날 다윗은 솔로몬에게 시므이를 처벌하라는 유언을 남기긴 하지만(왕상 2:8~9), 당장은 시므이를 용서한다. 과거 시므이의 잘못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몰랐기에 할 수 있었던 치기로 봐준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돌려보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정말 맞다. 누구도 자신의 앞날을 5분도 예측할 수 없고, 앞으로 될 일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따라서 변화무쌍한, 생각지도 못한 인생길에서 성도가 걸어야 할 발걸음은 오직 하나,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길이라고 말씀해 주셨다(요 14:6). 그 길은, 모든 인생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바른 길, 참된 길이다. 어떤 인생도 자신의 길을 만들 수 없다. 다만 주어진 길을 따를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길을 창조하신다.
따라서 인생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길, 곧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밖에 없다. 지금 당장 내게 유익을 주는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길이 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길의 성격과 다르다면 내려놓을 수 있는 게 지혜다. 오늘 하루도 이러한 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간구해야 한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오늘 하루’의 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혹시 방향이 잘못되진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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