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월) QT 현대 교회의 금송아지
- Chang Yong Park

- Sep 30, 2024
- 3 min read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출애굽기 32장 1~14절)
욕심의 금송아지
인간의 욕심은 하늘의 은혜를 거부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두려워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두려워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인간은 은혜 안에 있으면 평안이 찾아오고, 은혜가 사라지면 두려움이 찾아온다. 그러나 은혜가 사라졌을 때 우리는 기도할 수 있다. 기도는 은혜를 회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를 선택해야 했다. 사실 애굽에서 탈출하여 시내산까지 오는 과정에서 많은 기적을 경험했다. 그런데도 시내산에서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두려워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들과 동행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인간적인 욕심을 채우려 했기 때문이었다. 돌아보면 구름 기둥과 불기둥 아래에서 욕심을 내고 불평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임재하고 있음에도 어떤 욕심을 내고 두려워했다.
지금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을 수 있다. 평소에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하지만 크고 작은 고난이 찾아오면 원망하고 불평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아야 한다. 지금의 믿음에 만족하기보다 더욱 단단하고 굳건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성경이 우리의 믿음을 생명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을 주목해 보자. 생명이기에 자라야만 한다. 가만히 정체되어 있다면 생명일 수 없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일이 당연하듯이 믿음도 자라야 한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이 믿음이 자라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 보여준다. 지금 나의 믿음을 점검해야 한다. 정말 말씀 가운데 자라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안심의 금송아지
탐욕의 우상 숭배자는 두려움의 지배를 받는다. 이스라엘은 어떤 욕심을 내었을까? 그것은 바로 ‘안심’의 욕심이다. 1절에서 ‘더딤을 보다’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보쉐스’는 ‘당황하다’라는 의미다. 그들은 크게 당황했다. 반면, 자신들을 안심시켜 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안심할 수 있는 증거물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하나님 앞에서도 안심의 증거물을 끊임없이 찾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증거물을 자신들이 만들어냈다. 결국, 금을 모아서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다. 그들은 애굽에서 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섬겼을 것이다. 늘 눈으로 보던 그 형상을 다시 만들면 익숙하기에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나름 하나님을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변명이 있었지만 철저하게 자신들의 마음을 위한 결과물이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평소에 내 마음을 안심시켜 주던 세상의 것들에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말씀의 은혜로 평안을 얻을 수 있다. 더 나아가 고난 중에도 오직 말씀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 세상은 당장에 안심을 주는 것 같지만 반드시 썩어 없어진다. 그리고 마음에 두려움은 다시 찾아온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위로는 영원하다. 우리 영혼을 다시 소생시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은 바로 우리가 마음에 두려움이 있을 때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사건이다. 지금 나의 신앙에 이런 금송아지가 있는지를 살펴보자. 우리는 힘들고 지칠 때 무엇을 찾고 있는가? 세상의 많은 유희와 쾌락,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게 익숙한 무엇인가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이 아니라면 부질없고 헛된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나 고난을 겪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을 찾는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