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일(화) QT_잊어버린다는 것
- Chang Yong Park

- Sep 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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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2.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3.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4.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5.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6.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7.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8.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10.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11.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12.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13.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14.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세기 41장 1-16절)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내가 사랑하는 자가 기억하기만 해 주면 그만이다. 2년 동안 요셉은 술 맡은 자의 기억에서 잊힌다. 감옥에서의 2년은 요셉에겐 기다림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막막하고 답답한 시간이었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결국 요셉은 하나님의 때를 만난다.
바로 왕이 해석할 수 없는 꿈을 꾸었다. 온갖 사람들을 불러 꿈을 해석하게 했다. 하지만 아무도 꿈을 해석하지 못했다. 그때 비로소 술 맡은 사람이 잊고 있던 요셉을 기억해 낸다.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9절)
여기서 죄는 히브리어 ‘헤트’로 단순한 잘못이 아닌 심각한 죄를 뜻한다. 자신이 바로에게 지은 죄를 말한 것인지, 요셉을 잊어버린 죄를 뜻하는 것인지 정확하진 않다. 하지만 그 죄를 기억하며 요셉을 기억해 낸 것을 볼 때, 요셉을 기억하지 못한 미안함이 느껴진다.
여기서 살펴볼 것이 있다. 2년이 지나고 바로 왕이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 꿈을 통해 술 맡은 사람이 요셉을 기억해 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한 일이 아니다. 술 맡은 사람이 요셉을 기억해 낸 것으로 해석할 수 없다. 분명 요셉의 삶을 이끌어 가시던 하나님께서 요셉을 잊지 않으신다. 사람은 사람을 잊을 수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사람의 기억에 남고 싶어 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께 기억되는 삶
기억되는 삶은 그 자체로 이미 기적적인 삶이다. 바로의 꿈을 해석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된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을 보며 형통함(이쉬마츠리하으: 번영의 사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요셉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가 아는 형통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어느 한 장면도 고난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말씀에서 분명히 요셉을 가리켜 형통한 사람이라고 기록한다.
앞선 본문에서 다룬 것과 같이 요셉은 두 가지의 꿈(볏단이 절을 하는 꿈,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이 절을 하는 꿈)을 꾼다. 그 꿈은 요셉의 형통함을 예견한다. 하지만 요셉은 그 꿈을 기억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과 함께 하는 하나님만 바라본다. 오히려 요셉의 꿈을 기억한 것은 그 꿈을 꾸게 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선 항상 자신을 바라보며 고난을 견디고 있는 요셉과 그의 꿈을 기억하신다. 곧 요셉의 형통함은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억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억하는 사람은 고난의 삶도 형통의 과정이 된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된 요셉은 아들들의 이름을 통해 고백한다.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51-52절)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시는 사람은 고난과 어려움을 잊고 형통한 삶을 살게 됨을 알아야 한다. 나는 하나님께 기억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Photo by Hasan Almas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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